박영복 가수, '김포아리랑'이 명품으로 거듭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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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복 가수, '김포아리랑'이 명품으로 거듭나기를
  • 김성진 기자
  • 승인 2023.11.0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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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홍보대사가 돼서 재능 기부하면서 지역을 알리고 싶다”
가수 박영복의 김포 아리랑
가수 박영복의 김포 아리랑

사람에게 꿈이란 무엇일까. 절실한 것이든 그냥 스쳐 지나는 것이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목적이며 힘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박영복씨 또한 어릴 적 꿈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룬 케이스다. 그녀는 전라북도 산골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동네 어른들이나 가족들에게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연로한 부모와 넉넉하지 못한 가정 환경 때문에 정작 가수로 나서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외아들과 결혼 후 34년 동안 시부모를 봉양하고 삼 남매를 낳아 전업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마음 안에 똬리 튼 가수에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가수 되는 길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어서 나이 불문하고 얼마든지 가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활동을 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무대도 무한대로 널려 있다. 

이런 시대적인 열악함과 불리한 조건에 꿈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을 시니어 모델로 데뷔해 일부 달랠 수밖에 없었다. 4년 동안 시니어 모델(뉴월드 시니어협회)과 부회장직을 맡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가수에 꿈이 꿈틀거렸으니 이 또한 운명이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친구와 함께한 어느 자리에서 정음 작곡가를 만났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곡을 준 것이 본격적인 가수로의 길로 들어선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첫 곡은 ‘꽃대’였다. 드디어 가수 박영복이 탄생한 것이다. 이어 ‘영남루’ ‘인생아 사랑아’ 등을 발표하며 여러 곡을 가진 가수가 됐다. 하지만 아직은 이른 때였을까. 신곡 ‘김포 아리랑’을 발표하자마자 코로나가 발병해서 그의 무대가 또 막혔다. 그럼에도 유튜브를 이용해 가수 활동을 멈추지 않고 ‘김포 아리랑’ 전파에 나섰다. 

물론 연예계 생리상, 소속사 없이 활동하다 보니 매사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곡을 홍보했다. 사실 신곡은 제목에 '김포'라는 지역명이 들어 있어서 김포 홍보대사로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그는 소박한 꿈을 가진다. “김포시 홍보대사가 돼서 재능 기부하면서 지역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꿈은 많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임을 부인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행복하다. 무엇보다 일단 어릴 적 꿈이었던 가수라는 이름은 얻었기 때문이다. 첫 곡인 ‘꽃대’처럼 아직은 몽우리로 있는 듯 보이지만 언젠가 꽃으로 활짝 필 것을 믿기 때문이다.

박영복 씨는 아직 꿈을 완전히 다 이룬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녀는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면서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런 마음이 전해지면 김포 시민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팬들이 생길 것은 당연해보인다.

박영복 가수는 5천년의 역사를 가진 김포를, 자신의 노래를 통해 전국으로, 나아가서는 전 세계로까지 알리고 싶다. 그래서 2024년은 가수로서의 희망을 어느 해보다 크게 갖는다. 가수 박영복과 그녀의 신곡 ‘김포 아리랑’은 김포의 금쌀과 문수산, 그리고 대명항에 이어 또 하나의 명품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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