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다니엘 블레이크’故최인기씨 유족 두 번 울린 국민연금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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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다니엘 블레이크’故최인기씨 유족 두 번 울린 국민연금공단
  • 문순옥 기자
  • 승인 2020.10.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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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년간 공단 근로능력평가에 대한 이의평가 결과는 번복만 60%
강선우의원
강선우의원

버스 운전기사였던 최인기씨는 2005년과 2008년 심장 수술을 받고 근로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생활비를 받았다. 하지만 2012년 12월 정부가 근로능력평가 업무를 지자체에서 국민연금공단으로 옮긴 뒤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받고 조건부수급자가 됐다.

최씨가 거주하던 수원시는 국민연금공단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결국 최씨는 2014년 2월부터 한 아파트에서 일하게 됐다. 조건부수급자는 일자리를 얻지 않을 경우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일을 시작한 최씨는 그해 6월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8월 숨졌다. 이 사건은 한 남성이 복지 수급 조건을 맞추기 위해 구직을 하다 실패하고 공공기관에서 재심을 받던 중 사망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이름을 따 ‘한국판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이라고 불렸다.

최씨의 부인 곽혜숙씨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2017년 8월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를 대상으로 국가배상소송을 냈다. 당시 민변은 사회복지 수급자의 사망에 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첫 소송이라고 밝혔다. 수원지법 재판부는 그로부터 2년 4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가 공동으로 곽씨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 ‘최씨가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를 상대로 승소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다. 올해 1월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가 수원지방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곽씨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연금공단과 수원시로부터 단 한 번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너무 뻔뻔하다”며 “배상금도 배상금이지만 국가의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14일 국민연금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실(더불어민주당, 강서갑)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이 항소를 위해 부담하는 변호사 수임 비용은 성공보수 330만원을 포함해 990만원에 이른다. 1심 판결 기준 국민연금공단이 배상금 1,500만원을 수원시와 나눠 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임비용이 배상금을 넘어선 것이다.

2심 판결은 오는 29일 나올 예정이다. 유족 측은 2심에서 승소하더라도 국민연금공단 측이 재판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 국민연금공단이 부담하는 변호사 수임비용은 당초 배상액 1,500만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배상금을 넘어서는 금액을 부담하면서까지 국민연금공단이 항소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연금공단측은 항소이유서에 “절차에 따라 망인에 대한 근로능력 평가를 했다”며 최씨 근로능력 평가 과정에서 과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족측은 “지난번 판결은 조건부수급자에 대한 위법행위 책임이 인정된 첫 사례였다”라며 “국민연금공단측에서는 이번에 항소를 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추후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조건부수급자들이 소를 제기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 평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총 261건이었다. 이 중 60%를 넘는 157건이 ‘근로능력 있음’에서 ‘근로능력 없음’으로 번복됐다. 4년간 157명이 생계를 위해 자신이 근로능력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해야하는 고충을 겪었던 것이다.

강 의원은 “가난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무능력함을 입증하도록 강요하는 복지가 이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지만, 행정의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민연금공단은 근로능력평가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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