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대통령, 최윤희차관에게 "스포츠 인권 문제 직접 챙길 것"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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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 최윤희차관에게 "스포츠 인권 문제 직접 챙길 것" 주문
  • 곽행득 기자
  • 승인 2020.08.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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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후배의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후 인권 문제 전반을 책임지라는 뜻
문재인대통령
문재인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철인3종' 고 최숙현 선수의 안타까운 사건 직후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직접 챙길 것을 주문했다. 체육계 후배의 안타까운 죽음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후 인권 문제 전반을 책임지라는 뜻이다.

직후 열린 국회 청문회장에선 최 차관을 향한 문화체육관광위원들의 날선 질의가 빗발쳤다. "저희는 지난 2일 특별조사단을 구성하고, 대한체육회를 찾아 보고를 받고…." 최 차관은 서슬 퍼런 질의에 담담한 목소리로 '녹음기처럼' 준비된 답변을 반복했다. 문체부 장관 출신 도종환 문체위원장이 "도대체 보고받는 것 외에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체부 제2차관은 체육, 관광, 홍보 실무를 책임지는 자리다. 7월 대통령의 특별 언급 이후 최 차관의 동향 보도자료가 부쩍 늘었다. 문체부는 '2일 대한체육회 방문, 8일 경북, 경주 체육단체 감사현장 점검, 9일 고 최숙현 선수 묘소 참배, 14일 스포츠윤리센터 실무지원반 방문, 15일 체육분야 인권전문가 간담회, 28일 시도 체육국장 회의, 이달 6일 국가대표 여성지도자 간담회와 프로야구 방역 현장 점검' 등등 최 차관의 활약상을 홍보했다.

지난달 30일 제2차관 주재로 열릴 예정이던 '스포츠 분야 인권보호 추진방안' 브리핑이 하루 전날 오후 전격 연기되면서 의구심은 증폭됐다. 문체부는 "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지난해 12월 19일 임명 후 반 년을 넘어 8개월이 다 되도록 '보여주기식' 일정 소화 외엔 주도적 대외 활동이나 정책, 소통 행보가 없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

인사 때 불거진 일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 차관은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2015년 귀국해 2017년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체육인 2000여 명과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했고, 2018년 7월, 3년 임기의 한국체육사업개발 대표이사로 취임해 1년 반을 일하던 중 차관에 전격 발탁됐다.

고 최숙현 사건 이후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 최 차관 스스로 "엘리트 체육의 성적지상주의 문화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최 차관이 만약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3관왕, 전국민이 사랑한 '아시아의 인어'가 아니었다고 해도 하루 아침에 차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10년, 20년 체육계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없이 헌신해온 여성 인재들에겐 되려 열패감을 맛보게 하는 인사였다.

최윤희차관
최윤희차관

한편으로 문체부 내 최 차관의 고요한 행보는 대다수 여성 리더들이 사회에서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현장의 한 여성 체육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너무 똑똑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면 나댄다고 하고, 조용히 꽃처럼 앉아 있으면 무능하다고 한다. 여성 인력에 보수적인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꽃같은 유형을 선호하는 것같다."

문체부 제2차관은 '꽃처럼' 일하는 자리가 아니다. 체육뿐 아니라 홍보, 관광 실무와 조직을 두루 꿰뚫고, 실무진을 지휘하고, 많은 이들을 만나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정책 입안에 나서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더군다나 고 최숙현 사건으로 체육계 혁신이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성 체육인 출신의 능력을 보여줄 시간이다. 그런데 문체부를 살펴보면 오히려 장관이 '실무형'이다. 문체부 각 부처 실무국장, 차관을 두루 거친 '수재형 리베로' 박양우 장관은 모든 현안을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다.

관광학 박사로서 코로나 시대 대책 마련은 물론, 스포츠 인권 문제까지 진두지휘한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최 차관의 답변이 막힐 때면 어김없이 박 장관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시찰, 회의, 보고 외에 최 차관이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 현정부 최장수 차관을 역임한 전임 노태강 차관 때와는 모든 면에서 많이 다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전세계 국가올림픽위원회(NOC)에 여성 임원 비율 30% 이상을 권고하고, 스포츠 양성 평등과 스포츠 인권이 날로 중요해지는 시대, 체육계 여성 리더를 차관직에 등용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 직후 체육계에서 차관이 배출된 것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차관'의 자리는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들의 로망이다. 남녀불문, 이유불문,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여성 체육인들이 현장과 조직에서 더 많은 경험, 네트워킹을 통해 힘을 기르고, 언젠가 닥칠지 모를 기회에 늘 준비돼 있어야 하는 이유다.

여성 체육인을 대표하는 최 차관이 부디 문체부 내에서 존경받고, 인정받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편견인 '체육'과 '여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은 부디 없길 바란다.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廷)'(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된다). 오늘 여성 체육인을 대표해 걸어간 그녀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후배들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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