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의 50년 외길, 화려한 퍼포먼스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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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의 50년 외길, 화려한 퍼포먼스 장인
  • 신명섭 기자
  • 승인 2023.05.1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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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 과 구당 여원구 丘堂 呂元九 기념촬영
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 과 구당 여원구 丘堂 呂元九 기념촬영

서예가 청악 이홍화 선생은 어린 시절 청담스님의 속가 상좌로 수학하며 서예에 입문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옆길로 새지 않고 한 길을 걸었다. 말 그대로 장인이다. 

비단 자신의 글에만 정진한 것이 아니라 지난 1975년 서예 학원을 개원하여 50여년 가까이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니 서예가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미술관 전시 20회, 예술의전당 초대전 2회 등 총 37회의 개인전을 열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으니 서예가라는 한 길에서 여한이 없으리라 짐작 된다. 

청악 선생은 자신이 서예를 사랑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적성에 맞았고 한문과 연결된 학문의 연장성이 매력이 있었다”라고 대답한다.

또 “붓으로 쓰는 과정에서 오는 신성한 기운에 더욱 매료됐다”라고 덧붙인다.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찾아 그 일에 만족하면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인생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선생은 단순히 좌정하고 글씨를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퍼포먼스를 곁들여 보는 맛까지 더한다. 지금까지 대통령 취임식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400여회의 대형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밖에도 후학을 지도하고 각종 강의도 하면서 전방위적 활동을 한다. 거기에 유명 사찰의 현판 글씨까지 맡아 했으니 뭘 바랄까.

선생은 퍼포먼스에 주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실내에서 작업하는 정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50년 동안 서예를 했지만, 선생은 자신의 고정된 서체에서 정체되지 않고 늘 글씨체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고민하고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서예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충언을 한다. 지금도 하루에 50점 이상의 작품을 쓰며 정진하는 중이다. 

그는 서예가답게 한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요즘 학생들이 한문에서 멀어지고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등한시 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는 소회를 전한다. 

그러면서 점점 낙후되고 사양화되는 서예 분야에 대해 어느 예술 분야보다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서예란 단순한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마음의 정서를 위해서도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청악 선생의 서예 작품은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하얀 화선지에 먹물을 사용하는 것만이 아닌, 색감을 더한다는 것이다. 글씨 바탕에 은은한 채색을 추가해 그만의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다. 그는 이에 대해 “여백의 미에서 벗어나 회화성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는 일”이라고 말한다.  

독특한 색감을 위해 파라핀 초를 이용하고 얼음을 사용한다. 또한 옻칠나무나 크리스탈 조각을 이용하는 파격적인 변화도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여느 작가와는 차별화된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답보된 전통 기법에서 탈피하려는 변화의 시도는 개인의 발전뿐 아니라 그 분야의 발전을 꾀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기사이미지 사진=홈피캡쳐
기사이미지 사진=홈피캡쳐

특히 현재 경주 현광사에 보존된 순금 800돈을 녹여서 녹교(아교풀)를 사용한 독특한 작품 법화삼부경은 역작 중에 역작이다. 그는 요즘 무려 화선지 전지 240호의 대작인 이 작품을 기네스북에 등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의 바탕은 선비정신이다. 한 길에서 인정을 받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진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오묘한 희열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다작하다 보면 붓의 감각이 남다를 것은 당연지사, 속도를 조절하고 완급의 조화를 이루어 자기만의 고유한 서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대작도 탄생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청암 선생의 작품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서예를 단지 우리나라 안에서 자리 잡는 것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서예로 세계적인 위상을 정립하기를 권한다. 물론 우리 전통을 고수하면서 유교적 깊이를 더한다면 세계적 유산으로 진출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50년의 정진에도 날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을 지닌다. 그래서 드럼통에 대형 글씨를 쓰는 등 더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개발한다.

서예에 입문한 초보자들에게 의욕을 고취하고 그에 서예가들의 저변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도 서예의 활성화를 위해 보다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마련하고 전통 서예의 맥을 계승할 것이라는 의지를 전했다. 

한편 청악 이 홍화 선생은 1956년생으로 경북 김천 출생이다. 대한민국 명인으로 한국미협회원이며 한국서예 전람회 초대작가이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예술학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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