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김상태, 신태식, 김동신 선생 기리는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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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김상태, 신태식, 김동신 선생 기리는 전시회
  • 이진희 기자
  • 승인 2022.12.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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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속오작대도
속오작대도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정미의병을 이끈 김상태, 신태식, 김동신 선생을 2022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1907년 일제가 헤이그특사 파견을 빌미로 강제로 광무황제를 퇴위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김상태‧신태식‧김동신도 일제 침략에 맞서 정미의병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김상태는 1862년 충청북도 단양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을미사변, 단발령에 항거하여 경상북도 문경에서 이강년 의진의 중군장으로 을미의병에 참여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맞서 의병 재기를 준비하고 중군장으로서 이강년과 함께 의병을 이끌었다.

1908년 이강년 의병장이 체포‧순국하자 김상태는 의병의 전열을 정비하고 일본군과 항전을 이어나갔다. 700~900여 명의 의병을 이끌던 그는 1911년 일제에 붙잡혀 사형을 언도받고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김상태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신태식은 1864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1895년 을미의병에 합세하여 밀정 처단 활동 등을 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이 봉기하자 도대장(都隊將)으로 문경에서 이강년, 평해에서 신돌석 의진과 연합을 추진하고, 제천, 원주, 홍천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친 몸으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총상을 입고 붙잡혀 1909년 부터 10여 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0년 비밀결사인 의용단을 결성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서로군정서를 지원하였다. 1922년 일제에 의용단 조직이 발각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지만 1932년 병으로 서거하기 전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신태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동신은 1871년경 충청남도 회덕에서 태어났다. 의원(醫員)으로 생활하던 중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1906년 민종식, 최익현이 이끄는 의진에 참여하고자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의진이 와해되자 다시 1907년 내장산 일대에서 의병을 규합하였다.

삼남의병대장으로 칭하며 충청, 경상, 전라도로 활동을 넓혔고 1,000여 명이 넘는 부대를 이끌며 일제에 맞서 승리를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고향에 머물던 중 일제에 붙잡혀 종신형을 선고 받고 1910년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김동신의 공훈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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